●‘반도체 제왕.’
- 오랜 기간 미국 중앙처리장치(CPU) 전문 기업 인텔에 따라
붙은 수식어다.
▷ 사람들은 PC를 살 때 브랜드보다 ‘인텔 인사이드(intel
inside)’ 스티커부터 찾았다.
→ 지금은 아니다. 시가총액만 봐도 알 수 있다.
1일(현지시간) 인텔의 시가총액은 1236억6000만달러로 ‘싸구려 CPU 기업’이라고 얕잡아본 AMD(2145억1000만달러)의 절반에 불과하다.
급기야 인텔은 이날 장 마감 후 연 실적설명회에서 전체 직원의 약 15%인 1만5000명을 해고하고, 투자도 대폭 줄이는 구조조정 대책을 내놨다.
2016년 이후 8년 만의 대규모 구조조정이다.
→ 이날 시간 외 거래에서 인텔 주가는 18.9% 곤두박질쳤다. 인텔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AI 트렌드에서 소외된 인텔
- 이날 인텔의 실적 설명회 분위기는 시종일관 무거웠다.
▷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는 “실적이 실망스러웠다”고 고백했다.
→ 올 2분기 매출(128억3000만달러)이 1년 전(129억달러)보다 줄었고, 순이익은 14억8100만달러 흑자에서 16억1000만달러 적자로 돌아섰다.
→ 역량을 쏟아부은 데이터센터·인공지능(AI) 부문 매출(30억5000만달러)도 기대 이하였다.
→ 인텔은 올해 설비투자를 연초 대비 20% 줄인 250억~270억달러로 낮췄다.
▷ 겔싱어 CEO는 “AI 흐름을 타지 못했다”고 말했다. 반면 AMD는 2분기에 순이익(2억6500만달러)이 881% 늘었다.
● 업계에선 인텔의 경쟁력이 약화한 근본 원인을 세 가지로 분석한다.
① 첫 번째는 ‘기술 주도권’을 놓친 것이다.
▷ 2013년 취임한 ‘재무통 CEO’ 브라이언 크러재니치는 엔지니어들에게 원가 절감과 단기 성과를 요구했다.
→ PC산업 성장률이 꺾인 2016년엔 1만2000여 명을 해고했다.
인텔에서 쫓겨난 엔지니어들은 경쟁사로 옮겼다.
→ 기술 주도권보다 사업 효율화를 앞세우는 경영 방침은 최고재무책임자(CFO) 출신 CEO인 밥 스완 재임 기간(2018~2020년) 때까지 이어졌다.
▷ 인텔이 단기 성과를 따지던 그 시기에 AMD는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출신 엔지니어 리사 수(2014~)를 CEO 자리에 앉혔다.
→ 수 CEO는 “MIT 박사(엔지니어)가 하버드 MBA(경영학 석사) 밑에서 일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며 기술 경영에 고삐를 조였다.
10년 전 한 자릿수였던 AMD의 서버용 CPU 점유율은 지난 1분기 24%로 뛰었다. 인텔 점유율은 그만큼 떨어졌다.
● 업계에선 인텔의 경쟁력이 약화한 근본 원인을 세 가지로 분석한다.
② ‘사골국물’처럼 우려먹는 기술
▷ 기술에 대한 과신도 인텔의 경쟁력을 갉아먹은 원인으로 꼽힌다.
→ 인텔은 2019년까지 14㎚ 공정으로 CPU를 제조하면서도 “인텔의 14㎚ 공정이 대만 TSMC나 삼성전자의 7㎚ 공정보다 낫다”고 큰소리쳤다.
업계에서 “14㎚ 공정을 사골국물처럼 너무 오래 우려먹는다”고 힐난해도 듣는 둥 마는 둥이었다.
▷ AMD는 이 점을 파고들었다.
→ TSMC에 칩 생산을 맡긴 뒤 “최첨단 공정에서 만든 제품”이라며 인텔 고객을 하나둘 빼왔다.
인텔이 2021년 10㎚ 공정에서 양산을 시작했지만 이미 많은 고객을 잃은 뒤였다.
③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진출도 패착이란 평가가 많다.
▷ 인텔은 2021년 파운드리 진출을 선언하고 공장 건설에 200억달러를 투입했지만, 역량이 분산되면서 오히려 주력 사업(CPU)이 흔들리는 결과를 낳았다.
→ 파운드리 분야 적자는 최소 2~3년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 하지만 반도체 제왕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많다.
▷ CPU 설계 능력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인 데다 엔지니어 출신 겔싱어가 2021년 CEO로 취임한 뒤 기술 주도권을 되찾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어서다.
→ 자국 반도체 기업을 밀어주는 ‘팀 아메리카’도 이런 전망에 힘을 보태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