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생산 공정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테크월드뉴스=김승훈 기자] 현재 동아시아는 반도체 생산의 핵심 지역이다. 한국과 대만, 중국, 일본이 전세계 반도체 생산량의 약 80% 정도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와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22년 기준 반도체 생산 점유율 1위는 중국(24%)이었다. 이어 대만(18%), 한국(17%), 일본(17%) 순으로 4개 국가의 점유율은 무려 76%였다.
이들 국가들은 인공지능(AI)과 자율주행, 6G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대대적인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에 나서고 있어 시장 영향력 강화를 위해 노력 중이다.반면, 그 위상이 지금보다 더 강해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보고서는 오는 2032년 중국이 여전히 1위를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생산 점유율은 24%에서 21%로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한국(19%), 대만(17%), 일본(15%) 순으로 전망했는데 이에 따르면 약 10년 후에도 동아시아 4개 국가의 생산 점유율은 70%대를 유지하지만 2022년에 비하면 4%p 가량 줄어든 수치다.
같은 기간 미국의 점유율은 10%에서 14%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반도체 지원법이 통과된 후 인텔과 TSMC, 삼성전자 등이 미국 내에 첨단 반도체 생산시설을 구축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미국의 반도체 생산 점유율은 2022년 대비 3배 수준(203%)으로 증가하고, 첨단 반도체 생산 점유율은 같은 기간 0%에서 28%로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전체 반도체 생산 점유율은 4%포인트의 증가이지만 첨단 반도체에서의 점유율은 비약적으로 상승하는 것이다.
여기에 베트남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새로운 반도체 생산기지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와 보스턴 컨설팅 그룹(BCG)의 '반도체 공급망의 새로운 회복 탄력성' 보고서 [사진=SIA 제공]
▶ 대만: 신주과학단지 성공 발판 삼아 대만판 실리콘밸리 조성
세계 최대 파운드리 TSMC를 보유한 대만은 전공정부터 후공정까지 완벽한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대만 신주시에 조성된 신주과학단지에는 TSMC 본사를 비롯해 620여개의 하이테크 기업이 들어서 있는데 이곳에서만 전세계 비메모리 반도체 60% 이상, 첨단 반도체의 90% 이상이 생산되고 있다.
대만 정부는 대만판 실리콘밸리 플랜을 조성해 대만 반도체 산업을 더욱 확장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라이칭더 신임 총통은 선거 공약으로 '타오위안·신주·먀오리 대(大)실리콘밸리 계획'을 내걸어 당선됐다. TSMC가 있는 신주과학단지를 중심으로 약 20조원 이상을 투입해 여의도 면적의 5배가 넘는 규모의 과학단지를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대만 정부의 지원 하에 미국 반도체기업 AMD와 엔비디아가 대만에 아시아 최초의 연구개발(R&D) 센터를 추진·건설 중이다.
라이 총통은 취임 연설에서 "대만은 반도체 선진 제조 기술을 장악해 인공지능(AI) 혁명의 중심에 서있다"면서 "글로벌 AI화 도전에 직면해 반도체 칩 실리콘 섬의 기초 위에 서서 전력으로 대만이 'AI 섬'이 되도록 추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주과학단지 관리동 [사진=신주과학공원]
▶ 한국: 수도권 남부 세계 최대 메가 클러스터로 생산 능력 초격차
한국은 경기도에 반도체 생산시설이 집중돼 있다. 경기도 내 반도체 기업수는 785개, 종사자는 7만6000명, R&D 연구조직은 1만8000여개에 이른다. 이곳에서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의 28%가 생산되고 있다.
특히, 경기 남부에는 메모리, 파운드리, 패키지, 팹리스 업체들이 밀집해 세계적 수준의 생태계가 구축돼 있다. 메모리는 평택-화성(삼성), 이천-청주(SK하이닉스)가 중심이다. 파운드리는 삼성 파운드리가 있는 평택-화성을 중심으로 결집되고 있다. 패키지 거점은 천안-온양에 형성됐고, 팹리스 업체는 성남시 판교를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나아가 정부는 2047년까지 622조원의 민간 투자를 집중시켜 세계 최대 생산량을 갖는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는 경기 평택·화성·용인·이천·안성·성남 판교·수원 등 경기 남부권 8개 지역에 분산된 반도체 기업들과 관련 기관들을 하나의 클러스터에 응집시켜 이를 거대한 반도체 밀집 지역으로 만드는 것이다.
현재 19개 생산팹(공장)과 2개 연구팹이 가동 중인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16개(생산팹 13개·연구팹 3개)의 신규 팹을 신설할 계획이다.
오는 2030년 메가 클러스터에서 생산되는 웨이퍼만 월 770만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전 세계 최대 생산량이다. 무엇보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최첨단 메모리 생산을 비롯해 2㎚ 이하 첨단 공정 기반의 시스템 반도체 생산도 가능해 명실공히 세계 최대이자 최고 수준의 반도체 생산기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재용 회장이 차세대 반도체 R&D 단지 건설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 중국: 구형 반도체 1위 가시화... 상하이와 광둥 투 트랙 전략
중국의 반도체 중심은 상하이다. 중국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SMIC를 비롯한 700여개 반도체 기업이 둥지를 틀고 있는 상하이는 중국 반도체 생산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 반도체의 자존심인 SMIC는 미국의 견제와 방해로 첨단 공정 도입에 차질을 빚고 있으나 그럼에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첨단 공정보다는 자동차, 모바일 네트워크 장비, 스마트폰 카메라 등 구형 반도체 생산에 주력한 덕분이다.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구형 반도체의 비중은 여전히 80%에 이른다. 중국은 구형 반도체 시장에서 지난해 29%의 점유율로 대만(49%)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한국(점유율 4%)과 미국(6%)을 압도한다.
현재 중국의 생산량 증가 속도를 감안하면 향후 구형 반도체 시장은 중국이 장악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중국의 반도체 생산량은 362억 개로 월간 기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설계 기술 부문에서도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의 팹리스 숫자는 3243개로 집계됐는데 10년 전(632개) 보다 약 5배 증가했다. 한국의 팹리스 기업의 수가 200개 안팎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격차다.
최근 중국 정부는 상하이 외 다른 지역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있다. 지난 2020년 코로나19로 상하이가 봉쇄되며 반도체 산업이 큰 타격을 입자 생산 시설 분산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새로운 반도체 허브는 첨단기술의 중심인 광둥성 선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선전시 발전개혁위원회는 최근 반도체 및 집적회로(IC) 산업 클러스터 육성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2025년까지 반도체 및 집적회로 산업의 생산 능력을 향상시키고 설계·제조·패키징 등이 포함된 가치 사슬을 완벽하게 구축한다는 내용이다.
또, 12인치 반도체 파운드리 생산 라인 도입 확대, 차세대 반도체 공장과 기술력 확보 등 핵심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반도체 관련 산업 육성을 위한 구체적 방안들도 발표됐다.
▶ 일본: 소부장 경쟁력 기반으로 일본 전역에 반도체 거점 마련
원년 반도체 챔피언 일본은 TSMC와 긴밀한 협력을 통해 다시 한번 도약을 꿈꾸고 있다.
올해 초 일본 구마모토현에는 TSMC 제1공장이 가동을 시작했다. 공장 운영은 일본첨단반도체제조(JASM)가 맡는데 TSMC의 자회사인 동시에 소니·덴소 등 일본 기업이 출자에 참여했다. TSMC는 구마모토현에 제2공장 건설 계획을 이미 발표했으며, 주변에 소니그룹 등 관련 기업의 반도체 공장이 들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TSMC 공장 유치는 반도체 산업을 키우려는 일본 정부의 강력한 의지로 성사됐다. 일본은 이번 구마모토 공장 설비 투자의 절반에 가까운 4억760억엔(약 4조2000억원)의 보조금을 제공하기로 했다. 또 TSMC 2공장에도 7300억엔(약 6조5000억원)을 지원할 방침이다. 두 공장 합계 보조금은 10조7000억원 규모다.
일본 정부는 차세대 반도체 설계 기술 개발도 추진한다. 이를 위해 개방형 연구개발 거점과 양산 거점을 구축할 방침이다. 기술연구조합 최첨단반도체연구센터(LSTC)와 라피더스(Rapidus) 설립을 지원하고, 미래 기술 연구 개발을 위해 차세대 반도체에 활용될 광전 융합 및 양자 기술 연구개발을 함께 추진한다. 라피더스가 위치한 홋카이도는 물론 도쿄, 요코하마 등 곳곳에 산재한 소부장 기업들의 역량을 활용해 반도체 부흥을 유도한다는 전략이다.
이를 통해 글로벌 탑티어 수준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술을 한단계 더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현재 일본은 도쿄일렉트로닉, 어드밴스테스트, 스크린 등 공정별 글로벌 점유율 1위 기업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네덜란드 ASML이 주도하고 있는 노광장비도 기술의 원조격인 니콘과 캐논을 앞세워 연구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반도체를 두고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이 지속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미국: 삼성전자 텍사스·TSMC 애리조나
미국은 2022년 반도체 및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을 제정하며 527억달러(약 71조6700억원)를 반도체 산업에 지원하고 있다. 현재 미국 내에 공장을 건설 중인 인텔(85억달러), TSMC(66억달러), 삼성전자(64억달러) 등이 받는 보조금만 390억달러(약 53조원)에 달한다.
향후 미국의 첨단 반도체는 텍사스주와 애리조나주에서 생산된다.
텍사스주에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장이 3개 들어설 예정이다. 현재 운영 중인 오스틴 공장 외에 두 번째 공장은 테일러시에 짓고 있다. 이곳에서는 내년부터 4나노, 2나노 공정의 반도체를 생산한다. 또, 새로운 반도체 공장 건설 계획도 밝혔다. 세 번째 공장과 함께 연구개발(R&D) 센터, 패키징 시설까지 세워 오는 2027년부터 첨단 반도체를 양산할 계획이다.
삼성전자가 텍사스주에 대규모 투자를 하면서 텍사스주에 국내외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팹리스(설계전문) 기업들이 몰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또 텍사스주 정부는 반도체 기업들에 대한 세제혜택 등 각종 지원도 늘리고 있다.
애리조나주에는 TSMC의 반도체 공장이 2개가 건설 되고 있다. 앞서 TSMC는 미국 투자금을 기존 400억 달러에서 650억 달러로 대폭 늘려 애리조나주 피닉스 등에 반도체 공장 3곳을 더 지어 총 6곳의 공장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TSMC는 애리조나주에서 파운드리와 첨단 패키징 공정을 운영하며, 1나노 칩까지 생산한다.
인텔도 애리조나주에 300억 달러를 들여 파운드리 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이에 애리조나주에도 각종 첨단 기업들이 몰려들어 자체 생태계가 꾸려질 것으로 보인다.
▶ 싱가포르·말레이시아·베트남, 새로운 반도체 중심으로
최근 들어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들의 영향력도 점점 커지고 있다.
미국 투자전문매체 인사이더몽키가 발표한 2023년 반도체칩 시장점유율 순위에서 대만이 1위, 한국이 2위를 차지하는 동안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도 각각 7위와 9위에 올랐다.
미중 패권 전쟁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한국과 일본, 대만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하면서 인건비도 저렴하다는 것이 매력이다. 경제 성장을 원하는 동남아 국가들도 글로벌 반도체 기업을 자국에 유치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싱가포르는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의 11%를 차지하고 있다. 서울보다 약간 큰 면적에 반도체 공장이 무려 22개나 들어서 있다.
말레이시아는 1960년대 후반부터 미국과 유럽의 반도체 기업들이 진출해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의 7%를 책임지고 있다. 후공정 분야에선 전 세계에서 13%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산업이 집중된 북동부 페낭-클림(Kulim)은 글로벌 기업들이 잇따라 투자에 나서면서 동남아의 실리콘밸리로 부상하고 있다.
인텔은 이곳에 반도체 첨단 패키징 공장을 짓고 있으며, 메모리 반도체 글로벌 빅3 중 하나인 미국의 마이크론도 페낭에 지난해 두 번째 조립·테스트 공장을 지었다. 미국의 반도체 장비 회사인 램리서치,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독일의 인피니언, 네덜란드 ASML 등도 말레이시아로 향하고 있다.
여기에 중국 기업들도 말레이시아에 생산 거점을 마련하고 있는데 이는 메이드 인 말레이시아 제품은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부과하는 관세의 회피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중 제재가 시작되기 전인 2018년 페낭에 16개였던 중국 기업은 현재 55개로 급증했다.
베트남도 미국의 파트너가 되면서 신흥 반도체 강국으로 주목받고 있다.
인텔은 지난 2010년 베트남에 반도체 조립 테스트 공장을 완공한 이후 현재까지 패키징-테스트 분야에 약 15억 달러를 투자해 왔다. 패키징 분야 세계 2위 기업인 앰코테크놀로지도 5억2000만 달러를 투자해 베트남에 공장을 완공했으며, 10억7500만 달러 규모의 추가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바이든 대통령은 베트남을 찾아 차세대 반도체 공급망으로 육성하겠다고 약속했고, 엔비디아 젠슨 황은 베트남을 방문해 엔비디아의 제 2의 고향이라는 표현까지 쓰며 2억5000만 달러 투자를 핵심으로 하는 반도체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베트남 정부도 반도체를 먹거리로 삼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수십만 명의 반도체 엔지니어를 육성해 2030년까지 베트남에 첫 번째 팹을 세우겠다는 내용의 반도체 산업 국가전략을 발표했다.
출처 : 테크월드뉴스(https://www.epnc.co.kr)